화장실 습기, 빠져나갈 길보다 들어올 길이 먼저다
샤워를 마치고 환풍기를 몇 시간씩 돌려도 거울의 김이 늦게 걷히고 구석은 계속 축축한 집이 있다. 같은 힘의 환풍기를 단 옆집은 한 시간이면 마른다. 기계의 성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차이다.
5편에서 환기가 성립하려면 나가는 자리뿐 아니라 들어오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정리했다. 화장실은 이 조건이 가장 자주 어긋나는 공간이다. 이 글에서는 욕실이 어떤 환기 구조를 갖고 있는지, 문 하나가 왜 결과를 뒤집는지, 덕트 너머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지를 정리한다.
화장실은 배기만 있는 방이다
창이 없는 욕실은 대개 강제배기 방식으로 설계된다. 냄새와 습기를 팬으로 밀어내 공간을 주변보다 낮은 압력으로 만들고, 부족해진 공기는 옆에서 저절로 흘러들게 하는 구조다. 배기는 기계가 맡고 급기는 자연에 맡기는 셈이다.
여기서 흔한 오해가 생긴다. 환풍기가 습기를 '빨아들여 없앤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습한 공기를 밖으로 밀어내는 것뿐이다. 밀려 나간 만큼은 어디선가 채워져야 한다. 채울 공기가 없으면 팬은 계속 돌아도 실제로 나가는 양이 줄어든다.
주택 전체로 보면 이 원리가 법령에도 반영되어 있다.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하는 1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은 시간당 0.5회 이상의 환기가 이루어지도록 자연환기설비 또는 기계환기설비를 갖추게 되어 있다. 환기를 '창을 여는 습관'이 아니라 공기가 드나드는 경로 설계의 문제로 다룬다는 뜻이다.
- 팬이 공기를 밖으로 밀어낸다
- 밀려 나간 만큼 들어올 자리가 있다
- 나가는 통로가 막혀 있지 않다
셋 중 하나만 빠져도 팬은 돌지만 배출량은 줄어든다
문틈이 사실상의 급기구다
욕실에는 급기구가 따로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문 아래의 틈이나 문에 뚫린 통풍구가 급기구 역할을 대신한다. 이 틈이 막히면 급기가 사라진다.
샤워 후 문을 꽉 닫고 환풍기만 돌리는 방식이 잘 듣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욕실 안 압력이 낮아지면 팬이 밀어낼 수 있는 공기의 양 자체가 줄어든다. 겉으로는 힘차게 돌아가는데 실제 배출량은 처음보다 적어진 상태가 된다. 문턱에 수건을 끼워 두거나, 문 아래 틈을 매트가 가리고 있어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반대로 문을 활짝 열어 두는 것도 최선은 아니다. 욕실의 습한 공기가 거실 쪽으로 퍼져 나가면, 환풍기가 처리해야 할 대상이 집 전체로 흩어진다. 대개는 문을 조금만 열어 급기 통로를 확보하되 습기가 크게 번지지는 않게 하는 편이 균형에 맞는다.
판단 기준은 단순하다. 들어올 자리가 있는가, 그리고 그 자리가 욕실 가까이에 있는가이다.
- 문틈이 급기구 역할을 한다
- 배출량이 유지된다
- 습기가 욕실 안에 머무른다
- 환풍기가 처리할 대상이 좁다
- 들어올 공기가 없다
- 안쪽 압력이 낮아진다
- 실제 배출량이 줄어든다
- 팬 소리만 계속 난다
덕트 너머에는 다른 집이 있다
욕실 천장의 환풍기는 세대 배기구를 지나 건물의 배기 통로로 이어진다. 여러 세대가 하나의 수직 덕트를 함께 쓰는 구조라면, 한 세대가 환풍기를 끄고 있는 동안 다른 세대가 밀어낸 공기가 그 통로에 머물게 된다.
환풍기를 껐을 때 냄새가 올라오거나, 켰는데도 바람이 나가는 느낌이 없는 경우가 이런 상황과 관련된다. 이 문제 때문에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칙이 개정되어, 세대 내 배기구에 자동역류방지댐퍼를 설치하거나 단위세대별 전용배기덕트를 설치하도록 규정되었다.
오래된 건물일수록 이 장치가 없거나 접합부의 기밀이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 환풍기 자체는 멀쩡한데 배기가 시원치 않다면, 기계보다 그 뒤의 통로를 의심하는 편이 순서에 맞는다.
- 1 거실·복도의 공기가 문틈으로 들어온다
- 2 욕실 안의 습한 공기와 섞인다
- 3 천장 환풍기가 이를 위로 밀어낸다
- 4 세대 배기구를 지나 건물 배기 통로로 간다
- 5 역류를 막는 장치가 되돌아오는 흐름을 차단한다
어느 한 구간이 막히면 앞뒤 구간도 함께 느려진다
타일 위에 물이 남는 조건
공기를 다 내보내도 표면에 남은 물은 그 자리에서 따로 마른다. 욕실은 이 조건이 나쁜 편이다.
타일과 도기는 열을 잘 붙들고 있어 주변 공기보다 늦게 데워지고 늦게 식는다. 뜨거운 물을 쓴 직후에는 실내 수증기가 많고 표면은 상대적으로 차가우니, 4편에서 본 대로 그 표면이 이슬점 아래에 놓이면 물이 맺힌다. 벽에 맺힌 물은 공기 중 습기와 달리 환풍기가 곧바로 데려가지 못한다.
남은 물이 실리콘 이음새나 배수구 주변처럼 잘 마르지 않는 틈에 머무르면, 3편에서 정리한 곰팡이의 세 조건이 그대로 갖춰진다. 온도는 사람이 쓰기 좋은 범위이고, 물은 남아 있으며, 비누때는 유기물이다.
정리하면 화장실 습기는 환풍기의 힘이 아니라 공기가 지나갈 길과 표면에 남은 물의 문제다. 들어올 자리를 만들고, 물을 남기지 않는 쪽이 순서상 먼저다. 다음 글에서는 같은 공간에서 자주 겹치는 다른 문제, 배수구에서 냄새가 올라오는 구조를 다룬다.
| 남는 자리 | 왜 마르지 않나 | 먼저 할 것 |
|---|---|---|
| 거울·타일 벽면 | 표면이 차가워 수증기가 맺힌다 | 물기 훔쳐 내기 |
| 실리콘 이음새 | 틈에 물이 갇혀 공기가 안 닿는다 | 마른 천으로 눌러 흡수 |
| 배수구 주변 | 물이 계속 공급되고 유기물이 남는다 | 잔여물 제거 |
| 문 뒤·구석 바닥 | 공기 흐름의 사각지대 | 문을 조금 열어 흐름 만들기 |
| 수건·매트 | 젖은 채로 욕실 안에 남는다 | 밖으로 꺼내 널기 |
- 문 아래 틈을 매트가 막고 있지 않은가 급기 통로
- 환풍기를 켠 채 문을 꽉 닫고 있지 않은가
- 환풍기 커버에 먼지가 두껍게 끼지 않았는가
- 샤워 후 벽면 물기를 그대로 두지 않는가
- 젖은 수건이나 매트를 욕실 안에 두지 않는가
- 환풍기를 껐을 때 냄새가 되돌아오지 않는가
자주 묻는 질문
환풍기를 하루 종일 켜 두면 좋은가요?
급기 통로가 없으면 켜 둔 시간에 비례해 효과가 늘지 않습니다. 문을 조금 열어 둔 상태에서 물기가 마를 때까지 돌리고 끄는 쪽이 대체로 합리적입니다.
창이 있는 욕실은 창만 열면 되나요?
창이 하나뿐이면 들어오는 자리와 나가는 자리가 같아 교체량이 적습니다. 창을 연 상태에서 환풍기를 함께 돌리면 방향이 생겨 훨씬 잘 빠집니다.
환풍기를 껐을 때 냄새가 올라옵니다
배기 통로에서 되돌아오는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역류를 막는 장치가 없거나 접합부가 헐거워졌을 가능성이 있어 기계보다 통로 쪽을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샤워 후 바로 문을 열어 두면 어떤가요?
습기가 집 전체로 퍼져 다른 곳의 표면에 맺힐 수 있습니다. 물기를 먼저 정리하고 문을 조금만 열어 급기 통로를 두는 순서가 무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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