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습제 원리 — 고체가 녹는 순간부터 흡수가 멈출 때까지

옷장에 넣어 둔 제습제를 한 달 뒤에 꺼내 보면 위칸의 하얀 알갱이는 줄어 있고 아래칸에는 물이 차 있다. 물을 넣은 적이 없는데 물이 생겼고, 넣어 둔 고체는 사라졌다.

앞 글에서 환기는 방 안의 공기를 통째로 바꾸는 일이라고 정리했다. 제습제는 정반대다. 공기는 그대로 둔 채 거기 섞여 있는 수증기만 덜어 낸다. 이 글에서는 그 일이 통 안에서 어떤 순서로 일어나는지, 언제 멈추는지, 그래서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정리한다.

물을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녹는다

제습제 위칸에 든 하얀 알갱이는 대개 염화칼슘이다. 이 물질에는 조해성이라는 성질이 있다. 공기 중에 노출된 고체가 수분을 흡수하면서 스스로 녹는 현상을 말한다.

표현이 미묘하지만 차이가 크다.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의 수증기를 끌어당겨 그 물에 자기 자신이 용해된다. 그래서 흡수가 진행될수록 고체는 줄고 그 자리에 진한 소금물이 생긴다. 통 아래에 고인 물은 순수한 물이 아니라 염화칼슘 수용액이다.

흡수량 자체도 상당하다. 염화칼슘은 자체 무게의 14배가 넘는 물을 흡수할 수 있다. 다만 이 값은 조건이 갖춰졌을 때의 상한이고, 실제로는 주변 습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습도가 60%인 환경에서는 자체 무게만큼을 흡수하는 정도이고, 평균 온도 25~30℃에 상대습도 70%인 조건에서는 자기 무게의 200%에서 250%에 해당하는 수분을 흡수할 수 있다.

같은 제품을 같은 기간 두어도 어떤 곳에서는 물이 가득 차고 어떤 곳에서는 거의 그대로인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제습제의 성능이 다른 것이 아니라 놓인 자리의 습도가 다른 것이다.

조해가 일어나는 조건
  • 조해성을 가진 고체가 있다
  • 공기가 그 표면에 닿는다
  • 공기 중 수증기 압력이 고체 쪽보다 높다
고체가 수분을 끌어당기며 스스로 녹아 수용액이 된다

빨아들여 머금는 것이 아니라 녹아서 액체가 되는 변화다

통 아래에 물이 고이는 순서

제습제 용기가 위아래 두 칸으로 나뉘어 있고 그 사이가 막이나 망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 과정을 전제로 만든 구조다.

처음에는 위칸이 마른 알갱이로 가득하다. 습한 공기가 통 안으로 들어오면 표면의 알갱이부터 수증기를 끌어당기고, 겉면이 축축해진다. 흡수가 이어지면 알갱이가 서로 붙어 덩어리가 되고, 이윽고 형태를 잃고 액체가 된다. 이 액체는 무거워서 아래로 흐르고, 중간 막을 지나 아래칸에 고인다.

아래칸에 물이 고인다는 것은 고장이 아니라 제 기능이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다. 반대로 오래 두었는데도 아래가 비어 있다면 그 자리가 생각보다 건조하거나, 공기가 통 안까지 닿지 않는 위치라는 뜻이다.

다 쓴 제습제를 다룰 때 주의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래에 고인 것은 물처럼 보이지만 염 성분이 녹아 있는 용액이라, 피부나 옷에 닿거나 쏟아지면 곤란해진다.

제습제 통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
  • 설치 직후 위칸은 마른 알갱이 상태, 아래칸은 비어 있다
  • 표면 흡습 겉면 알갱이부터 축축해지기 시작한다
  • 덩어리 형성 젖은 알갱이끼리 붙어 굳은 덩어리가 된다
  • 액화 형태를 잃고 진한 수용액이 된다
  • 하강·고임 무거워진 액체가 막을 지나 아래칸에 고인다
  • 평형 도달 주변 습도가 낮아지면 흡수가 사실상 멈춘다

흡수는 언제 멈추는가

제습제가 무한정 습기를 빨아들이지는 않는다. 여기에 이 글의 핵심이 있다.

녹아서 생긴 수용액도 그 나름의 수증기 압력을 가진다. 주변 공기의 수증기 압력이 이보다 높으면 수분이 용액 쪽으로 옮겨 가고, 낮아지면 이동이 멈춘다. 상대습도가 높아질수록 흡습량이 계속 늘어나는 것도, 용액의 수분 분압이 바깥 공기의 수분과 평형을 이루려 하기 때문이다.

이 평형 개념이 제습제의 한계를 설명한다. 제습제는 습도를 0으로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그 공간의 습도를 자신과 평형인 지점까지 끌어내리고 거기서 멈추는 장치다. 그리고 그 지점은 공간의 크기와 습기가 새로 들어오는 속도에 달려 있다.

밀폐된 옷장이나 신발장에서 효과가 뚜렷한 것은 그래서다. 부피가 작고 새 습기가 거의 들어오지 않으니 평형점이 낮게 잡힌다. 반대로 거실이나 문이 열려 있는 방에서는 습기가 계속 새로 공급되므로, 제습제는 그 유입분을 따라가느라 소진될 뿐 습도를 눈에 띄게 낮추지 못한다.

2편에서 환기와 제습 중 무엇을 고를지 판단하는 기준을 다뤘는데, 제습제는 그 판단 안에서도 한 칸 더 좁은 도구다. 방 전체가 아니라 닫힌 상자 안을 담당한다.

어디에 두느냐가 결과를 가른다
닫힌 옷장·신발장
  • 공기의 부피가 작다
  • 새 습기 유입이 적다
  • 평형점이 낮게 잡힌다
  • 습도가 눈에 띄게 내려간다
거실·문 열린 방
  • 공기의 부피가 크다
  • 습기가 계속 새로 들어온다
  • 유입분을 따라가다 소진된다
  • 습도 변화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실리카겔은 왜 물이 고이지 않는가

포장 상자에 들어 있는 작은 봉지 속 알갱이는 원리가 다르다. 실리카겔은 다공성 물질이라 수많은 구멍으로 표면적을 넓혀 그 표면에 물 분자를 붙잡아 둔다. 자기 자신이 녹지 않으므로 형태가 그대로 남고, 액체도 생기지 않는다.

대신 붙잡아 둘 수 있는 양은 염화칼슘보다 적다. 그 대신 햇빛에 말리거나 가열하면 붙어 있던 물이 떨어져 나가 다시 쓸 수 있다. 흡수량을 택하면 물이 고이고, 재사용을 택하면 용량이 준다는 맞바꿈이다.

용도가 갈리는 지점도 여기다. 옷장처럼 계속 습기가 스며드는 곳에는 용량이 큰 쪽이 맞고, 카메라나 서류를 넣어 둔 밀폐 상자처럼 액체가 생기면 곤란한 곳에는 형태가 유지되는 쪽이 맞다.

정리하면 제습제 통의 물은 습기가 모인 결과가 아니라 고체가 수분과 만나 녹은 결과이고, 그 흡수는 주변 공기와 평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멈춘다. 그래서 넓은 공간보다 닫힌 공간에서 제 몫을 한다. 다음 글에서는 습기가 가장 자주 문제가 되는 공간, 화장실 습기가 유독 잘 빠지지 않는 구조적 이유를 다룬다.

두 방식은 무엇이 다른가
구분염화칼슘형실리카겔형
작동 방식수분을 끌어당겨 스스로 녹는다구멍 표면에 물 분자를 붙잡는다
형태 변화고체가 사라지고 액체가 남는다형태가 그대로 유지된다
흡수량자체 무게의 14배가 넘는 수준까지상대적으로 적다
재사용어렵다말리거나 가열하면 다시 쓸 수 있다
맞는 자리습기가 계속 스미는 옷장액체가 생기면 곤란한 밀폐 보관함
제습제가 제 몫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것
  • 놓아 둔 공간의 문이 실제로 닫혀 있는가 평형점을 좌우
  • 아래칸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는가
  • 통 주변이 옷이나 벽에 막혀 있지 않은가
  • 아래칸이 넘칠 만큼 차 있지 않은가
  • 넓은 방에 두고 효과를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자주 묻는 질문

제습제를 여러 개 두면 습도가 더 내려가나요?

닫힌 공간이라면 평형점에 도달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교체 주기도 길어집니다. 다만 도달할 수 있는 습도 자체가 개수에 비례해 계속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공간이 열려 있으면 개수를 늘려도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아래에 고인 물은 버려도 되나요?

물이 아니라 염이 녹아 있는 용액입니다. 하수구에 그대로 흘려보내면 배관과 금속 부품에 좋지 않을 수 있어, 제품에 표기된 처리 방법을 따르는 편이 안전합니다.

위칸 알갱이가 아직 남았는데 물이 가득 찼습니다

아래칸 용량이 먼저 찬 경우입니다. 넘치면 주변이 젖을 수 있으므로 알갱이가 남았더라도 교체하는 편이 낫습니다.

제습기가 있으면 제습제는 필요 없나요?

담당하는 범위가 다릅니다. 제습기는 방 단위의 공기를 처리하고, 제습제는 문이 닫힌 옷장이나 상자 안처럼 공기가 오가지 않는 작은 공간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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